여전히 거부하고 싶은 대상이지만, 이제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된 코로나. 코로나가 우리 곁에 찾아온 지 일 년이 가까워져 간다. 많은 것들이 달라졌고 이전에 없던 새로운 경험들이 일상으로 쌓여간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코로나로 인한 어려움과 불편함은 누구도 예외는 없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크고 작게 분투해 온 시간이었을 것이다. 나와 내 가족, 이웃을 지키기 위해. 하지만 단지 불편함을 넘어 코로나가 생계의 위협이 되고 위기가 되는 곳이 있다. 소극장 연극 무대도 그중 하나다. 올 한 해 전국 대부분의 소극장이 개점휴업 상태를 피해 가지 못했다. 공연 자체도 어렵고 공연을 준비했다가도 취소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광주 예린소극장 윤여송 대표는 올해 전에 없던 새로운 공연을 했다. 무관객 공연이다. 연극 인생 4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윤여송 대표/ 예린소극장
“공연 준비하고 홍보물 배포하고 공연 들어가는데 하루 전날쯤 행정기관에서 전화가 와요. ‘공연하면 안 됩니다’하고. 눈물 흘렸죠. 가슴이 찢어졌습니다. 그래서 관객 없이 공연했어요. 관객이 없을 때는 공연을 안 해도 되는 거 아니냐 하는데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그게 아니거든요. 이미 공연을 하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관객이 없더라도 약속한 시각에 무대는 올려야죠. 그래서 저희는 배우들끼리 공연을 했어요. 40년 만에 처음 해보는 무관객 공연이었죠.”
관객과의 호흡이 가장 큰 매력인 소극장에서 무관객으로, 텅 빈 객석을 향해 공연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대답 없는 메아리 같지 않을까. 윤여송 대표는 오히려 덤덤하게 말한다. “관객이 한 명 있을 때나 백 명 있을 때나 배우는 무대 위에서 최선을 다하는 거고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그 시간에 쏟아내는 거”라고. “백 명 있다고 더 힘을 내는 것도, 한 명 있다고 대충하는 것도 아니라고” 말이다. 한 사람의 진가는 위기 속에서 드러난다고 한다. 아무리 큰 어려움에도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은 아름답다. 40년 연극 내공으로 지역 공연계를 지켜가는 예린소극장을 찾아간다.
‘관객은 없어도 관객과의 약속은 지킨다’
‘40년 연극 인생의 마지막 놀이터,
광주 예린소극장’
윤여송 대표/ 예린소극장
“예린소극장이 제가 세 번째로 만든 소극장인데, 2016년 4월 23일에 개관식을 했어요. 4개월 동안 혼자서 이 공간을 만들었어요. 나이 육십을 바라보면서 소극장을 연다고 하니까 주변에서 저보고 미쳤다고 했어요. 그래도 그동안에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털어서 만들었어요. 만들면서 그랬죠. 이건 내 놀이터다. 내가 얼마나 살 수 있을지 몰라도 사는 동안에 하고 싶은 작품을 하고, 연극하는 사람들의 놀이 공간으로 만들어보자고 했었는데 세상일이라는 게 사람 마음대로 되지는 않잖아요. 어렵지만 절대 후회하지는 않아요.”
광주 궁동 예술의 거리. 일부러 찾아봐야 눈에 띄는 구석진 골목에 예린소극장이 자리하고 있다. 예린소극장은 윤여송 대표가 꾸린 세 번째 소극장이다. 연극 초창기 광주 천변 근처에 ‘블랙코메디’라는 카페식 극장을 운영했고 90년대에는 양동에서 ‘씨엘소극장’을 열었다. 두 극장 모두 운영이 어려워 문을 닫았다. 그리고 4년 전, 50대 중반을 훌쩍 넘긴 나이에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문을 연 곳이 이곳 예린소극장이다. 주변의 만류에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로지 연극만 바라봐온 인생이었기에 소극장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객석은 50석 남짓. 소극장 중에서도 작은 규모다. 이 작은 무대에서 참 많은 공연으로 관객들을 만나왔다. 치열한 격동기를 살아낸 한 남자의 이야기, 낭독극 「오발탄」부터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그려내는 아름다운 인생 이야기 「아름다웠던 시간」, 인간의 존재가치를 생각하게 하는 「타자수」, 인간의 언어가 가진 폭력성을 담아낸 작품「수업」 등... 각기 다른 이야기 같지만 예린소극장의 무대에 오른 작품들은 모두 하나의 줄기로 연결돼 있다. 바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라는 주제 의식이다. 특별하고 대단한 누군가가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 윤여송 대표의 연극에 대한 철학이기도 하다.
윤여송 대표/ 예린소극장
“요즘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싫어하잖아요. 그냥 깔깔거리고 웃는 것,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웃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물론 그런 재미있는 연극도 좋지만 저는 어떤 울림을 줄 수 있는 연극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코믹성보다는 잔잔한 인간의 이야기, 실제 우리 주변에서 있을 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로 작품으로 담아왔어요. 고고한 철학이 있거나 교육적인 내용이 있는 연극이 아니라 사람 냄새가 나는 사람의 이야기가 진정한 감동을 준다고 생각해요”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삶의 이야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 속에
감동과 울림이 있다.
올해는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새롭게 무대에 올린 작품이 있다. 「무녀도」라는 제목으로 초연을 하고 각색을 거쳐 재탄생한 작품 「유혼」이다. 다른 작품들이 그렇듯 「유혼」역시 우리네 평범한 민중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어느 한 명의 영웅이 아니라 이름 없이 스러져간 무명 열사들의 넋을 위로하고자 했다. 코로나로 인해 무관객 공연을 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다행히 지난달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관객과의 첫 만남이 이뤄져 큰 호응을 얻었다.
특별히 애정이 가는 작품도 있다. 바로 윤여송 대표의 연극 인생을 작품화한 「광대의 꿈」이다. 2015년에 초연을 한 뒤 해마다 공연을 이어가고 있는 예린소극장의 스테디셀러 작품이다. 스무 살에 연극에 매료된 뒤, 환갑 나이가 되도록 소극장을 지켜온 윤여송 대표의 자전적인 이야기이자, 이 시대 연극인의 보편적인 삶을 담고 있다. 윤여송 대표는 1979년 제암리 학살사건을 주제로 한 작품「두렁바위」로 연극에 데뷔했다. 진부한 이야기로 들리지만, 운명처럼 느껴졌다. “나는 연극무대에서 등장인물이었고, 인생이라는 무대에서도 등장인물일 뿐이었다. 등장인물의 삶을 살면서 나는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 그런데도 삶이 아름다웠던 것은 살아가는 매 순간 최고의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라는 「광대의 꿈」 대사처럼 무대 위에서 또 다른 존재가 될 때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을 느꼈다. 현실은 녹록지 않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한다는 자긍심이 있기에 40년 연극 인생을 버텨올 수 있었다. 무대 위에서 기립박수를 받았던 기억, 공연을 보고 돌아가면서 정말 감동적이었다고 인사해준 관객, 공연 날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뚫고 찾아와준 관객들... 힘든 순간마다 그런 기억들이 위로됐다.
윤여송 대표/ 예린소극장
“보통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해요. 왜 연극을 했느냐. 예술이라는 장르 자체는 내가 좋아서 하는 거거든요. 일반 직장은 경제성 때문에, 생활해야 하니까 하기 싫어도 해요. 근데 연극은 내가 좋아서 하는 거예요. 내가 무대 위에 있을 때 내가 살아있다는 희열을 느끼죠. 무대에 서서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아요. 무대 위에서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돼요. 상투적인 이야긴데 이렇게밖에 표현을 못 해요. 배우가 무대에 올라가서 연기자가 됐을 때 그 무대는 현실의 공간이 되거든요. 그 공간 속에서 모든 걸 다 이뤄요. 그게 재밌어서 하다 보니까 직업이 되더라고요.”
자전적 연극 인생 풀어낸 작품 「광대의 꿈」
연극인의 희로애락 담아내다
연극이 좋아서 연극을 하고 있지만, 현실에 무관심한 이상주의자는 아니다. 지역의 중견 배우이지만 여전히 거리를 돌며 직접 포스터를 붙인다. 홍보 수단에는 전통적인 포스터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홍보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작품 연구와 창작 활동에 힘을 쏟으려 한다. 틈틈이 시를 써왔던 경험으로 낭독극을 시도하기도 하고, 실험과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지역 연극계의 발전을 위해서 연극인들의 자체적인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면, 제도적인 지원도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예술 관련 공공기관을 향한 쓴소리에도 거침이 없다.
윤여송 대표/ 예린소극장
“예술이라는 것 자체가 아래에서부터 스스로 성장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문화정책은 위에서 심어주는 방식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없어요. 공공기관에서 공공성을 가진 공연장이 많잖아요. 그런 공연장과 민간 소극장과는 경쟁이 안 돼요. 민간 공연장들은 생업이거든요.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에요. 일반 관객들에게 무료로 좋은 작품을 보여주는 것도 좋지만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 보니까 민간단체들은 점점 사라져가는 거죠. 예술인들이 생업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공공성을 내세워서 풀뿌리 민간단체의 예술을 말살시키고 있다고 생각해요.”
연극도 적당히 배가 불러야 할 수 있는 것
예술로 생업이 가능한 세상이 오길...
예술과 생업. 그 사이에서 오늘도 위태로운 줄다리기를 하는 예술인들이 많을 것이다. 윤여송 대표도 마찬가지다. 예술, 특히 연극은 배고픈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윤여송 대표는 말한다. 예술도 어느 정도는 배가 불러야 할 수 있는 거라고. 너무 배가 고프면 예술도 없는 거라고. 올해 윤여송 대표는 극장에 머무는 시간보다 바깥을 돌아다닌 시간이 훨씬 많았다. 극장에서 연극을 할 수 없으니 다른 일이라도 해야 했다. 바닥, 절망 같은 단어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할 뿐이다. 그 시간을 잘 버티며 극장 문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일. 그것이 지금 자신의 몫이라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코로나 없는 연극의 봄이 오지 않을는지. 그때 관객들과 만날 생각으로 벌써 새로운 작품 구상도 하고 있다. 어떤 인생 이야기가 우리의 가슴을 울릴지, 예린소극장의 봄날, 지역 연극계의 봄날이 기다려진다.
윤여송 대표/ 예린소극장
“내년에는 특이한 형태의 연극을 해보려고 해요. 혼자서 하는 1인극 형태의 나레이션 연극을 해보려고 구상 중이에요. 작품의 기조는 유수한 단편소설을 재창작해서 연극으로 풀어나가 보려고 지금 몇 개 작품들을 보고 있어요. 이 극장 처음 만들면서 이곳에 내 영혼을 쏟아붓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이 공간에서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때까지 연극으로 관객들을 만나고 싶어요.”
예린소극장
광주 동구 예술길 23-1
https://m.cafe.daum.net/dPfls60/_rec
- 글. 유연희 heyjeje@naver.com
사진. 황인호 photoneverdie@naver.com
예린소극장 제공
20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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