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브로서재22 꽃을 짓다 꽃을 짓다 / 윤여송 나무가 꽃을 짓는다 따스한 봄의 햇살을 등허리에 걷어 업은 늙은 촌부의 얼굴에 주름 골을 훌러내린 굵은 땀방울이 데굴 마른 땅을 적셔녹여 정성으로 한줌 한줌 일년을 심어 지을때 봄 바람에 살랑살랑 배시시 웃음을 짓고 느릿 하품 기지개로 나무는 꽃을 짓는다. == 시집 '수염 난 여자를 만나다' 중에서 == 2023. 4. 1. 목어 목어 / 윤여송 있어야 할 니 자리를 놓치고 어울리지 않게 산중 마른 들보 한 자락에 대롱대롱 창한 지느러미 뀌미에 꿰어져 뻐끔뻐끔 퀭한 눈 아구에 구슬 앙당 물고 바람이 물결이라 마른 비늘 단장하고 유유하는 어라 너 참 고하고도 가엾고나. == 시집 '수염난 여자를 만나다' 중에서 == 2023. 3. 24. 갈매기 갈매기 / 윤여송 살랑 살랑 갈바람에 갈매기가 끼룩 끼룩 끼루루룩 갈매기가 출렁 출렁 파도위를 갈매기가 통통 배를 따르면서 갈매기가 내년 추석 기다리마 갈매기가 어미 마음 대신으로 갈매기가 무탈 무병 잘가거라 갈매기가 가는 자식 배웅한다 갈매기가. === 시집 '수염 난 여자를 만나다' 중에서 === 2023. 3. 11. 청산연가 청산연가 / 윤여송 청산을 가얄텐데 나비는 어디메뇨 꽃잎을 쌍접으로 사뿐히 날개저어 바람을 차고올라 구름을 나를제에 낼랑도 너를따라 청산을 가얄텐데. --- 시집 '수염 난 여자를 만나다' 중에서--- 2023. 3. 10. 가을은 가을은 / 윤여송 파랑 바다를 마시고 파랑 색으로 취한 하늘에 파랑 바람이 살랑 불어 파랑 언어를 쏟아낸다 파랑 산기슭 언저리 파랑 이끼 앉은 계곡에서 파랑 개울물로 멱을 감던 파랑 새 한 마리 푸드득 파랑 하늘이 쏟아 내는 파랑 언어에 깜짝 놀라서 파랑 날갯짓으로 날아올라 파랑 하늘에 포물선을 그리고 파랑 바람에 가을을 담은 파랑 하늘은 장난스레 파랑 얼굴로 까르르르 파랑 웃음을 웃는다. == 시집 '수염 난 여자를 만나다' 중에서 == 2023. 3. 3. 팔월의 능소화는 팔월의 능소화는 / 윤여송 남자가 여자를 사랑했다 여자도 남자를 사랑했다 버드나무 물오른 가지에 보송한 솜털로 싹 티움 시작되는 봄날 어는 언저리에 키 높은 담장을 사이에 두고 모르는 남자와 모르는 여자가 사랑이라는 생경한 언어를 안았다 그리고 시간은 연정이라는 이름으로 흐르고 어느 날 담장 밖 남자는 해후를 약속한 별리의 시간을 통보하고 애틋한 그리움으로 가을이 가고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여름이 오는 시간들을 까치발로 담장 밖을 그리던 여자는 기다림에 그리움에 지쳐서 꽃이 되었다지 담장 밖을 그리는 까치발로. == 시집 '수염 난 여자를 만나다' 중에서 == 2023. 2. 23. 이전 1 2 3 4 다음